지난번에 포스팅했던 <기계가 언어를 쓴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구매할 때 함께 구매한 책입니다.
저는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을 많이 사용하는 분위기의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거의 모든 업무를 클로드와 함께 하다 보니 이게 과연 나의 산출물인지, 클로드의 산출물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사고능력에 의문을 품기도 하고, 클로드를 더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클로드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내가 채워줘야 하는지(사실 둘다겠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생각외주>라는 책을 만나서 읽었습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생각외주'는 AI로 인해 생각을 하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목대로 책에서는 왜 생각이 중요한지, 잃어버린 생각의 힘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책이기 때문에 요약하기가 애매해서, 인상깊었던 구절 몇 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언제나 사고의 부담을 덜어주는 무언가를 만들어왔습니다. 신의 계시, 전통, 권위, 규범, 제도는 모두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제공해 주었습니다…이 점에서 AI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라기보다 인간이 오래전부터 갈망해 온 역할을 가장 정교하게 수행하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이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안도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안도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사람이 사고를 넘길 때 느끼는 편안함은 실제로는 불안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불안을 잠시 미뤄두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멈춤은 고도의 인지 에너지를 소모하는 뇌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멈춤의 시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 부정적 수용능력입니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가 말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는 확실한 근거나 이유를 찾으려 서두르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심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며,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는가, 내가 놓치고 있는 변수는 없는가, 지금의 선택이 어떤 파장을 만들 것인가. 이 짧은 멈춤의 시간이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불편함을 견디는 힘입니다. 우리는 흔히 빠르게 답을 찾는 능력을 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상태를 잠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 모르겠다’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제시된 그럴듯한 답에 기대게 됩니다. 그러나 판단은 확실성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AI는 이 불확실성의 시간을 압축합니다. 그래서 판단의 장치를 유지하려면 의도적으로 여지를 남겨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즉각적인 결론을 유보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고, 반대 근거를 일부러 탐색하는 태도 말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생각하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의 답변은 행동의 가이드를 명확하게 주는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사고의 흐름을 쌓아가야만 인공지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리뷰했던 책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결론이 명확합니다. 저자가 이미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고, 길이도 짧아서 콤팩트해요. 짧은 시간 안에 명료한 글을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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